1. 오늘은 골더스그린의 한국마트에 장을 보러갔다. 골더스그린은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동네로 유명한 곳인데 일본인들도 꽤 산다고 한다. 우리집에서 버스로 삼십분 정도 거리이니 별로 멀지 않고 큰 한국마트가 있다고 얘기를 들어서 전부터 한번 가보자고 했지만 쌀이나 김치처럼 덩치 큰 식품들은 에스케이 마트에서 배달을 시키고 자잘한 것은 대충 아스다나 학교에서 가까운 대영박물관 앞 서울마트를 이용하다 보니 갈 기회가 없었다. 오늘 하정원이 학교에 들어가는 날이고 셋째주의 exeat까지 안나오려고 마음먹고 있는 터라 주말에 먹을 간식을 좀 사줘야 할것 같아서 갔다. 이동네에서 산지 넉달이 넘었지만 동네 근처는 별로 돌아다녀 본적도 없다. 혹시나 뭐가 있는데 우리가 놓친걸까도 싶었는데 오늘 83번 버스를 타고 아스다 너머까지 안가본 쪽으로 처음 가보면서 역시 별거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골더스그린은 역근처라 상점들도 많고 북적이는 나름 번화가이면서도 센트럴 런던과는 달리 좀 촌스러운 시골도시 번화가같은 분위기가 나는 것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유대인 동네라더니 검은색 중절모같은 높은 모자에 검은 긴 외투 차림의 아저씨들 모습도 색달랐고 길가다 문득 들여다본 어느 상점 진열장에는 히브리어들이 적힌 장식품들이며 유대교에서 쓰는 촛대 등 신기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아 요즘 카메라가 너무 아쉽다;;;;)
2. 서울프라자에서 장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매우 커서 놀랐다. 한국식품 웬만한 것은 없는게 없이 다 있었고 가격도 에스케이마트보다 쌌다. 하정원은 신이 나서 한국 과자들을 이것저것 줏어담았다-.- 장을 보고 나서 근처 한국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런던의 한국음식점들의 공통점은 어딜 가서 뭘 먹어도 늘 내가 이것보다는 훨씬 잘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는 거다;;
3. 정원이를 데리고 올만에 하이위컴으로 향했다. 작년에는 거의 매주 갔으니 참 뻔질나게도 갔던 곳인데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덜 가게 될듯 싶다. 하정원은 엄마랑 헤어져서 서운하다고 하면서도 친구들을 빨리 만나고 싶다고 들떴다. 오늘이 방학 마지막날인데도 내내 명랑하고 즐거운 모습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5시 반 살짝 넘어 기숙사에 도착했는데 벌써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다 저녁을 먹으러 갔는지 아무도 없다. 학기가 바뀌어서 방도 바뀌엇다. 하정원은 새 방에 들어가서 같은 방을 쓰게 된 아이들 이름표를 확인하면서 투덜댄다. 하자키 싫은데 왜 하필 얘가 내 윗침대야!(하자키는 히로노라는 일본 여자애의 별명이다. 얘는 하정원을 좋아해서 자기 생일파티에도 초대해주었는데 하정원은 얘를 싫어한다;;) 앗 리디아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다왔네! 나도 가고싶었는데 먼저 갔다와서 사진을 떡하니 걸어놓다니!!!
짐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헤어졌다. 하정원을 꼭 껴안고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너는 너무나 멋진 아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정원은 나에게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식당으로 걸어간다. 지난학기 첫날 하정원을 데려다주었던 때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좀 무섭다고 가지말고 있어달라더니 조금 있다가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엄마 이제 가라고 했었지. 자기들끼리 어울려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을 이층침대에 걸터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던 하정원. 우리 하정원이 내 키만큼 자라면 그때는 얼마나 멋진 여자가 될까.
4. 네이버 유럽여행 카페를 요즘 들락거리고 있는데, 처음에 막막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금방 대충 루트가 나온다. 런던 4-5박-파리 5박-베네치아 2박-피렌체 2박-로마 5박 정도면 무난할것 같다. 런던에서 파리로는 유로스타로 이동하고 파리에서 베네치아로는 이지젯을 이용하고 이탈리아내 이동은 기차로 하면 될것같다. 마음같아선 야간열차 타고 국경을 넘는 경험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지만 그건 다음기회에;;; 이정도면 인터레일도 필요없다. 이제 빨리 비행기표를 예약해야지.
5. 한수씨랑 나는 소비패턴이 비슷하다. 이건 무난한 결혼생활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 부부가 소비패턴이 다르면 갈등이 생길 소지가 많다. 누구에게나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게 서로 다르면 상대방이 왜 저런데 돈을 쓰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헛돈 쓰는것 같아 아깝다. 우리는 차나 가구 사는 데에는 좀 인색하면서 여행에는 돈을 쓰는 편이다. 이러니까 엄마는 결혼 십년이 넘었는데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장만 안하고 신혼때 살림 그대로라고 뭐라고 하시지만;;; 눈에 보이고 오래 남는 가구와 눈에도 안보이고 돈쓴 흔적도 안남는 여행 중에서 어느 쪽에 돈을 쓰는게 덜아까울까.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여행갔다오면 남는건 사진과 기억뿐인데 기억은 날이 갈수록 흐릿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었던 몇개의 순간만은 흐려진 기억속에 결정처럼 선명하게 남는다. 어차피 죽는 순간에 남는건 그 몇개의 인상적인 순간뿐이 아닐까.
여행카페를 뒤지면서 답글도 최대한 열심히 달아준다. 누가 내 질문에 답해주면 굉장히 고마우니까. 내가 답글을 달아줄수 있는 곳이라야 지금 있는 런던과 바르셀로나 정도겠지만. 겨울방학때 어디로 여행가면 좋을까 물었을때 누군가 바르셀로나를 얘기했다. 나는 거기 뭐가 있는데? 넌 왜 갔는데?라고 좀 어이없다는 투로 물었고 상대방은 멋적게 스페인에서는 거기밖에 안가봤다며 웃었다. 사실 바르셀로나에 대한 내 지식은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고 황영조가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곳이라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그런데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지금은 바르셀로나라는 단어를 보면 그곳의 눈부신 햇살이 떠오른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거리가 생각난다. 겨우 사흘밖에 머물지 못하고 온 그곳이 그리워진다. 여행은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곳,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곳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내가 평생 그곳에 다시 가지 못할지라도. 아마도 런던을 떠난 후 나는 오래도록 런던을 그리워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찾는다 해도 그 런던은 내가 30대의 끝자락을 정원이와 함께했던 그 런던은 아니겠지만.
최근 덧글